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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의 사회의식에 관한 진단과 개선3

2005.12.02 17:20

장봉현 조회 수:8735


유길준이 백여년전에 이미 제시한 문교시책을 광복 후에 한국의 교육자나 정부나 문교책임자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것은 그 만큼 한국의 지도자들이 받는 영향이나 식민지교육이 철저하게 성공했고 광복후 미군정이나 역대정권이 주체성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제는 유길준이 제시한 한국교육의 핵심을 한국인으로부터 철저하게 박탈한 것이라는 자각이 우리나라의 지도자나 국민에게 결여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국어, 국사, 과학교육이 왜 중요한가를 자각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일제가 간교하게도 우리로부터 이 세 가지를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박탈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한국은 식민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독립이 될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광복 후에 우리가 바로 교육을 한다면 국어를 일어나 외국어에 오염된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묻혀 있는 고어나 사투리에서 발견해서 풍부하게 발전시켜서 가르치고, 국사는 우리가 동북아에서 제일 오래된 선진민족이고 우리와 전통을 같이 하는 종족이 티벳트, 몽고, 네팔,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광범하게 펴져 있고 우리와 같은 전통을 가진 민족으로 지금 가장 대표적인 민족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국수주의는 아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과거에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응이 잘못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그 대응책을 교육해야 한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임진왜란과 한말 일제시대 광복 후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검토하지 못한 점을 철저히 검토,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게 교육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런 취지의 교육이 없다. 중국인의 수법, 일본인의 수법이 어떻다는 것을 교육하고 그에 대한 대응하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특히 한말에 나라가 바깥 세계로 열렸을 때의 우리의 외교사를 철저히 검토해서 오늘날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은 꼭 한말을 방불케 하는 지도자와 국민의 행태다. 지도자는 외세에 붙으려고 하고 국민들은 분열이 되고 서로 싸우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신경병이란 과거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정리가 없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과거에 대한 검토와 정리가 없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또 하려고 한다.

우리가 일본식 문법구조를 받아들임으로서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일본화가 된다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철저히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언니"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한국적인 인간관계가 파괴가 된다. 여학생들이 "같아요"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마음을 만들어낸다. 대체로 우리말은 능동체를 사용한다. 일본말은 능동체보다 수동체를 사용한다. 우리는 보인다 할 때 일어는 보여진다. 어떤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일어는 지어졌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본이 칠백년이상 왕은 유명무실하고 무사가 지배하는 동안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다시 말해서 자기가 주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이로운 현실적 여건에 적응함으로서 생긴 표현구조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우리는 능동적 주체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러한 표현구조를 보존해야 할 것이다.

다른 면으로 광복 후 한국교육은 일제식민지교육을 바닥에 깔고 미군정과 미국문화를 덮어 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주체적인 교육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단계에 와 있지 않다. 우선 현실이 이렇다는 자각부터 선행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홍익인간, 인이 우리 민족의 전통의 핵심이라는 것이 자각되고 교육이 되어야 한다.

예술분야에서는 다른 분야나 마찬가지로 중국, 일본, 서양의 물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주체성이 희박하다. 그림에서는 우리 것과 서양 것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있고 음악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으나 먼저 우리 음악 - 물론 국악의 뜻으로 - 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이 서양음악에서 뛰어난 존재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지만은 우리 국악에 대한 가치의 인식이 필요하고, 국악의 보존 뿐 만 아니라 국악과 서양음악의 융합이 지금도 시도되고 있으나 이러한 경향이 신장이 될 필요가 있으나 이것은 학교교육에서부터 국악교육이 잘 될 필요가 있다.

대중가요는 서양과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영향의 결정적이다. 일본에는 연가(演歌)가 한국의 영향이라고 하지만은 일본의 궁중악이 고대한국악이고 낭화절(浪花節)과 전통연극이나 전통가요가 한국 것을 토태(土台)로 남방이나 중국의 영향이 있겠으나, 현대일본의 대중가요가 한국의 대중가요의 토태(土台)가 된 것을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소위 "뽕작 논쟁"으로 소상히 전문적으로 밝혀진바 있다. 이것은 현대한국문화 일반이 표절문화라는 현상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연극이나 무용에 있어도 고전적인 전통적인 것과 서양 것이 공존하고 주체적인 전통과 서양의 융합 전통의 현대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서양이나 일본의 모방이 많지만 상당히 한국적인 특색을 많이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일본 모방 표절이 나타나고 있다. 개중에는 장차 노벨문학상도 틀림없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조각부문에도 아직은 서양조각의 모방단계이고 건축의 출현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서예가 한국적인 특색이 없는 것이 아니나 주체적인 자세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것 같다.


소위 "지역감정"이라는 말로서 정치인에 의해서 불이 질러진 문제는 호남 푸대접의 문제가 있다. 박정권이래 근 삼십년간 경상도 사람이 정부에 중용이 되고 재벌도 호남출신은 적고 경상도가 많다고 주장한다. 모일간지에서 연속기사도 학자들에 위촉해서 조사한 결과가 분야별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조사를 보면 여러가지 숫자가 나오지만 핵심적인 문제인 지역감정 자체에 대한 분석이 소홀히 되어 있는 느낌이다. 지금 대학교수들 사회과학계통의 학술모임에서도 전라도나 전라도출신 모씨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금기다. 말을 하면 깜짝 놀랄 정도다. 이것은 분명히 과민상태는 극단적인 정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호남출신 모교수는 피해와 피해의식을 구별해야 된다고 말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주로 호남출신의 피해의식의 내용이라는 것이 부각이 되어 있지 못하다. 원래 영호남문제라는 것이 없고 오히려 지역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여당의 이모씨가 이왕이면 경상도 사람 찍어주자는 데에서 발단이 되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느 시점에서도 어느 지방에서도 말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시인을 한다. 여기서부터 선동정치가가 꼬투리를 잡아 박정권에서 경상도 출신의 중용, 경상도 재벌의 육성, 심지어 철도나 고속도로 공장등등에서 들고 나와서 피해의식을 고취시켜서 전국민이 여기에 놀아나고 있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집단정신병 집단망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박정권하에서 경상도사람이 중용이 되었다는 것은 지역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어느 사람에서나 누구나 자기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이 당선이 되면 우리 한국사람으로 해서는 말도 안되는 무자격자로 보이는 새파란 젊은이를 중용을 한다. 대통령의 참모가 마약중독으로 적발된 일이 있다. 박정희가 군인출신이고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소 피해의식도 있기 때문에 특히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다 보니 자기가 경북출신이고 대구사범을 나왔기 때문에 자연 군출신이나 고향사람 대구에서 학교다닐 때 친한 사람의 연줄, 정치자금등으로 가깝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까이 했다고 보는 것이 과학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

호남출신의 입장에서는 호남선 새마을이나 호남고속도로를 달릴 때 호남 푸대접의 감정을 일단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왜 경부선은 좋고 4차선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통량이나 국가재정등 그러나 이 문제도 그 이전에 우리나라의 국토개발이 일본이 노일전쟁을 일으킬 때부터 한반도를 일본의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서의 국토개발계획이 아무런 변경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 호남푸대접의 출발이라는 점을 지역감정 논쟁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부선 철도가 부설된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지역차별을 따지자면 일본에 가서 따져야 되지 않나 하는 말이다. 일제잔재 일본이 남기고 간 국토계획 때문에 동족끼리 싸워야 되는가?


또 한가지 소위 "지역편견(地域偏見)"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편견이라는 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편견과 지역기질의 차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부터 이러한 지역적인 기질차이를 평안도를 맹호출림(猛虎出林), 함경도를 이전투구(泥田鬪狗), 경상도를 태산교악(泰山喬嶽), 전라도가 풍전세류(風前細柳), 충청도가 청풍명월(淸風明月), 경기도가 경중미인(鏡中美人), 강원도가 암하고불(岩下古佛)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경상도라도 지역에 따라 기질이 다르고 다른 도도 마찬가지다. 가족에 따라 기질이 다르고 심지어 성씨에 따라 기질이 다르고 한집안 식구라도 또 기질차이가 난다. 요사이 정객에 의해서 표를 모으기 위해 지역감정이 고취되기 전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지역경계론(地域警戒論)이 있다. 그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유언으로 차령산맥이남 사람을 경계하라는 것에 잘 나타나 있는 호남인을 경계하는 전통이다.

실지로 공공연하게 말은 않지만 호남지역이외의 사람들 전부가 호남인을 경계하고 호남인도 호남인을 경계한다.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배신을 당할지 모른다든지 믿을 수 없다, 이용을 잘하고 깊은 믿는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호남사람이 장이 되면 다른 도 출신을 몰아내고 호남출신으로 그 자리를 메우고 단결을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해관계도 힘이 있는 곳을 따라간다. 실지로 보면 호남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기질적으로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호남사람을 보면 아주 순진하고 선량한 사람이 있고 표정부터 불평에 찬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고 착착 붙는다. 애교가 많다. 이것은 무뚝뚝하고 미련한 경상도의 정반대다. 충청도는 느리고, 팔도사람들 중에 제일 경계심을 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강원도 사람이다. 감자바위라는 표현이 나오듯이 반항 음모의 경향이 가장 적은 느낌이다. 이러한 호남인에 대한 경계심이 호남인들이 지적하는 지역차별로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소위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암암리에 옛부터 내려오는 전라도 경계에 대한 불만이 있는데다가 일본의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서의 한반도의 국토개발계획이 그대로 계속되는 데에다가 박정권이 박정희 자신이 경북출신이고 대구에서 사범학교를 다녔고 군인출신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탓으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다가 보니 군인이나 사범출신 경상도사람을 더 가까이 하고 호남출신을 경계한 것으로 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감정적인 차원에서의 논의는 절대 소용이 없고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옛부터 암암리에 호남인 기질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고 이러한 경계심에 대한 불쾌감을 많은 호남인이 가지고 있는데다가 경부선과 호남선의 차이가 일본침략의 결과로 생긴 차이라는 것을 인식을 못하고 박정권에 와서의 정치 행정이 호남이나 호남인에 소홀한 인상을 주게 되었고 이러한 감정을 정객들이 부추겨서 악용하고 있는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군사정권의 비리를 규탄하면서 이러한 비리에 많이 끼여들지 못한 것을 불평을 하는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군사정권이 믿지 못하는 경상도나 집권자 주변의 사람들도 당연히 소외된다는 일반적인 현상의 일환으로 파악이 되어야 한다.

사실 호남인들이 주장하는 불평등은 앞에서 지적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언론자유와 지방자치가 실시가 되고 중국과의 교류 남북교류가 트이게 되면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다. 호남출신이 타도출신 동포들에게 경계심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공공연하게 불평을 주장하면 해결될 문제다. 기질차 불평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니 사실대로 인식하고 정당하게 고쳐나가는 것이 건강한 해결이다. 같은 지역 같은 가정에서도 기질차 불평등이 존재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토태(土台)위에 해결하는 노력으로 사회가 명랑해지고 서로 믿고 사랑하고 협조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 필자는 60년대 초부터 호남의 후배들을 위해 자주 내려가서 지도도 하고 영호남 정신의학회 모임을 가지게 해서 계속하게 하고 있는데 호남의 후배들에게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있게 하고 참여를 하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하면 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잘 안된다. 말하자면 소극적인 불평이 많지 영호가 합쳐서 역사의 주역이 되자는 의식이 희박하고 항상 종속적 입장에 있으려고 한다. 비호남인은 이러한 호남인의 기질이나 호남의 역사적 조건 -부정과 긍정- 을 이해하고 호남인의 피해의식이나 심리를 이해해서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 화합할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 문화 분야에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영향과 광복 후 현재까지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거기에다가 서양 특히 미국사회나 문화에 직접 접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우리의 사회나 문화가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래 특히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민족적 자각과 외국인들의 인정으로 국민적 자긍심이 솟아나서 전통적인 의상에 대한 긍지가 높아져 한복의 현대화 내지 세계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나 한국인의 의복은 서양의 복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식생활도 의복과 마찬가지로 특히 광복 후에 처음에 한국식품에는 영양가가 없어 육식을 많이 해야 된다는 영양학자들의 주장이 잘못 보급되어 한식기피 양식선호의 경향이 특히 상류층에 현저하다. 마늘 냄새가 난다고 김치 먹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식생활에 있어서의 주체성 상실의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그후의 서양의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 한국의 김치나 나물 한국의 식사가 영양학적으로 매우 건강에 좋은 식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물은 김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독특한 식품으로서 서양인이 육식을 많이 하고 한국의 나물같은 것이 없어 직장암에 잘 걸린다고 해서 섬유질이 많은 식사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식사가 건강식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식물성과 동물성이 항상 조화롭게 조리가 되어 섬유질이 풍부하고 재료가 다양해서 균형있는 영양섭취가 가능하다. 너무 짭고 맵게 먹지 않으면, 먹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조절이 되면, 이상적 건강식이라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본다.

주거문제는 아파트와 양옥이 범람해서 한국의 주체성이 식생활보다 더 심하게 침해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거실이 마루이고 온돌을 사용하는 정도가 우리의 전통가옥이 보존되고 있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한옥의 구조와 영위기()를 현대화시키느냐가 앞으로의 한국건축의 과제다.


앞서 광복 후 오히려 우리말이 일본화하는 경향을 지적한 바 있지만은 국어순화의 문제는 우리의 주체성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 상징적인 문제다. 어떤 원로시인과 원로철학자의 대화에서 원로철학자는 우리말의 경어를 미개한 탓으로 돌리는 무식과 자기말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테레비젼에서 본 일이 있다. 이러한 "엽전사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어서 일제가 우리에게 가한 조직적인 한국, 한국역사, 한국인, 한국문화, 한국어 말살정책에 대응 상응하는 과학적이고 전통적이고 조직적인 시책과 교육이 없이는 무한정 잔존하고 청산에 오랜 세월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19세기 말에 달레 신부를 비롯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서양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양 삼국의 말 중에 한국말이 제일 어렵다고 외친다. 어려운 이유는 첫째가 경어고, 둘째가 형용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빛깔을 표현하는 말, 맛을 표현하는 말, 어떤 선교사는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한국말에는 열 가지가 넘는다는 글을 썼다는 말도 있다. 어떤 이는 일본 단어나 중국말은 조금만 배워도 써먹을 수 있는데 한국말은 그렇게 안된다. 안되는 이유가 경어를 구별해서 배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말에는 존경을 나타내는 동사의 어미변화는 전무하고 황제에 대해서나 누구에 대해서나 한가지 표현뿐이고 존경을 나타내는 것은 황제 앞에 두는 형용사로서 존경을 표시한다. 일본말은 원래 한국말이었는데 고대에 미개한 일본 토착민에 적응하는 동안 많이 변해서 중국어나 서양어보다는 경어가 있지만은 우리말에 비하면 간단하다.

경어나 형용사의 풍부함 그리고 쇠고기를 먹는데 영미는 12내지 20여 부분을 구별하고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이 50여가지 부분을 구분해서 먹는데, 우리 전통은 200가지 이상 부분을 구별해서 먹는다고 한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면 우리 문화가 지극히 오랜 문명생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경어를 사용할 수 있으려면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지각(perception)이 전제가 된다. 서양의 예법인 에티켓트(etiquette)는 우리의 예절에 비하면 교통규칙과 같은 것이다. 상대방의 인격이나 나와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서로가 충돌없이 불편없이 지내는 교통정리다. 예절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둔 그 관계에 알맞는 말이나 행동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에티켓트보다 훨씬 문명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양에 대한 열등감으로 예절을 버리고 서양식 에티켓트를 모방하려고 하는 쪽은 나은 편이고, 에티켓트도 못 배우고 예절도 배우지 못한 야만인이 득실거리는 것이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받아 온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나는 47년간 정신과의사로서 노이로제(신경증)나 정신병 환자를 진료하고 정신치료에 주력한지 40년 가까이 된 경험에서 얻은 것은 정신이 건강하고 인격이 성숙해야만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인식을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불건강한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경어를 쓰든지, 경어를 적절하게 쓰지 못하고, 자기위치를 모르고, 자존심이 없거나, 소위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은 자존심이 없는 열등감의 반동이다.


이상 현대한국인의 사회의식을 정치, 경제, 종교, 학술, 교육, 예술, 소위 지역감정, 사회, 문화, 국어, 국사등 분야별로 검토해 보았으나 공통적인 문제는 주체성이 없고 표절문화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근래에는 조금씩 각 분야에서 주체적인 현대 한국문화 건설로 가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나 아직은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안녕하십니까? 치과의사 홍성우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와 같은 첨단 시술이 행해지고 또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해도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으며 의학은 그야말로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의 정체가 드러났고,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과학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과질환인 충치 그리고 풍치 역시 교합과 관련지어 발생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교합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질환들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는데, 이런 재미난(?) 치과이야기들을 치과의사가 아닌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이 좋은 치료를 위한 눈과 귀가 되어드리기를 희망하면서 두 권의 책을 2012 년, 2014 년에 출간했으며, 2023 년 11 월에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1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2


홍성우의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개정판


잘 닦는데 왜 썩어요?

왜 혼자만 치아가 잘 썩을까요? 치료받은 치아가 또 썩는다면 정말 안닦아서 그럴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치과의사들도 충치가 있답니다.
남들은 찬물을 잘 마시는데 왜 혼자만 치아가 시릴까요? 그리고 신경치료를 해서 아예 시린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치료가 정말 좋은 치료일까요?
왜 음식물이 혼자만 잘 낄까요? 치과에서는 인공치를 하라거나 두 개를 붙혀서 아예 끼지 않도록 하라는데 그게 맞는 치료일까요?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면서 치아들을 뽑으라는데 정말 뽑지 않고서는 교정치료가 불가능할까요?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은 많은 의료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정보를 가려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알기 쉬운 치과상식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치과상식을 소개드리며, 좋은 치료 그리고 꼭 합당한 치료를 받으시길 소망해봅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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