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생의 사는 이야기

홍선생의 사는 이야기

어느 세미나를 다녀와서...

2004.05.23 17:33

홍성우 조회 수:13980 추천:86

드와이트 리먼 무디는 별로 인기 없는 배경, 즉 뉴잉글런드의 작은 농촌 출신이었다. 1837년 소작농이자 석수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4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8명의 아이들은 아주 가난하게성장했다. 초등교육밖에 받지못했지만 그는 근육질의 탄탄한 체구에 열심히 노력하며 야심있고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시카고로 이주하여 제화점에 취직한 그는 이러한 성격과 직업의식으로 일약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무디는 곧 시카고의 빈민가에 사는 거친 소년들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사역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부족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경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증거하는 값진 은사를 발전시켰다. 불신영혼을 구원하려는 무디의 열망은 너무도 강했으며 무보수로 어린이들을 위한 선교와 새 YMCA를 운영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1870년 그는 평생의 사역자이자 동역자인 생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 사역을 위한 완전한 구도를 갖게 되었다. 1872년 시카고 화재로 그가 건설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가진 그의 전도집회는 그 전역을 흔들곤 하였다.

그는 학식보다 경험이 녹녹히 녹아있는 재담꾼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어는 종종 문법이 틀리기도 하고 설교 원고는 철자와 문법이 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결단을 촉구하는 그의 강한 메시지와 성령 충만한 집회는 어느 것보다 강하고 능력이 있었다. 그는 복음성가와 독창곡으로 인한 방대한 매출을 두 개의 학교와 선교를 위해 모두 헌금했으며, 1886년에는 시카고에 무디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직업 기독교 사역자와 선교를 위한 헌신자들을 훈련시켰다.

무디는 단순히 그의 이름을 D.L.무디라고 서명하고 결코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평범한 무디, 혹은 부흥사 무디로 불리길 원했다. 결코 미국과 영국을 넘어 전도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학생자원 단체와 해외 선교를 위한 끊임없는 독려를 통해 기독교 확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의 학식보다 경험이 풍부한 농담때문에 그를 더 잘 기억하였다. 무디의 정식 학교교육은 고작 5년 정도다. 그의 설교원고와 편지들을 검토해 본 사람이면 엉망인 철자법과 문법, 문자사용으로 겨우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이런 그가 적극적으로 전도에 대한 용기를 가지게 된 계기는 무디의 주일 학교에서 소녀반을 가르치는 한 선생의 도움 요청으로부터 시작된게 아닌가한다. 폐출혈로 죽음을 앞둔 그 선생은 맡고 있던 소녀들을 하나하나 개종시키는 데에 무디의 도움을 원했다. 이 일 이후 무디도 자신의 사업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도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다른 사이트에서 따온 글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무디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무디선생님이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교회에는 신앙이 깊은 목회자와 신도 그리고 역시 믿음이 깊은 어느 기자가 선생을 취재하러
나와 있었다.

무디선생님은 여느때처럼 잘 하지 못하는 영어로 그 교회안의 신도들을 감동시키는 동안
그 기자는 문법이 몇개나 틀리는 지를 세어가기 시작했다.

설교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무디선생님과 인사하는 동안, 그 기자는 선생님곁에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은 설교하는 동안 문법이 몇번 틀렸는 지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무디선생님은 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비록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당신은 잘하는 영어로 몇사람이나
   감동을 주었습니까?

어제는 내 인생에서 손가락안에 드는 힘든 날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어지간한 시련에는 꿈쩍도 안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속담에도 여든 먹은 사람이 세살먹은 아이에게 배운다는 속담이 있다.
학문은 따지는 재미도 있지만 때에 따라 귀를 열고 들어주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학문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유명한 사람이 그랬다고 해서 생각을 닫아버리면 더이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세미나모임에 내 이야기를 하러갔다가 문법이 틀릴 때마다 지적을 받았으며,
결국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조금 밖에 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안녕하십니까? 치과의사 홍성우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와 같은 첨단 시술이 행해지고 또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해도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으며 의학은 그야말로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의 정체가 드러났고,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과학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과질환인 충치 그리고 풍치 역시 교합과 관련지어 발생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교합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질환들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는데, 이런 재미난(?) 치과이야기들을 치과의사가 아닌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이 좋은 치료를 위한 눈과 귀가 되어드리기를 희망하면서 두 권의 책을 2012 년, 2014 년에 출간했으며, 2023 년 11 월에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1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2


홍성우의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개정판


잘 닦는데 왜 썩어요?

왜 혼자만 치아가 잘 썩을까요? 치료받은 치아가 또 썩는다면 정말 안닦아서 그럴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치과의사들도 충치가 있답니다.
남들은 찬물을 잘 마시는데 왜 혼자만 치아가 시릴까요? 그리고 신경치료를 해서 아예 시린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치료가 정말 좋은 치료일까요?
왜 음식물이 혼자만 잘 낄까요? 치과에서는 인공치를 하라거나 두 개를 붙혀서 아예 끼지 않도록 하라는데 그게 맞는 치료일까요?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면서 치아들을 뽑으라는데 정말 뽑지 않고서는 교정치료가 불가능할까요?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은 많은 의료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정보를 가려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알기 쉬운 치과상식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치과상식을 소개드리며, 좋은 치료 그리고 꼭 합당한 치료를 받으시길 소망해봅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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