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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의 사회의식에 관한 진단과 개선4

2005.12.02 17:17

장봉현 조회 수:8475


주체적인 한국문화건설에 눈을 뜨지 못하고 표절문화를 탈피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필자가 제창한 한국인의 민족신경증의 결과이다. 한국인의 민족신경증은 한국 것은 무엇이든지 열등하고 외국 것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심리를 말한다. 이것은 개인신경증에 있어서 자기의 주체성을 침해당해서 공격자를 물리치지 못하면, 물리치지 못한 자신을 저주, 비하, 말살하고 자기를 정복한 공격자인 적을 숭상, 모방하려는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현상과 동일한 심적 기제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증거로 보아 우리의 조상은 오천년이상의 문명의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중국문화의 핵심을 창조한 동이족이고, 맹자 이루장에 명기되어 있는 바와 같이 공자가 가장 존경하는 순임금은 동이지인이고, 공자나 맹자도 동이의 후예라는 것을 밝혀서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민족신경증이 개인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주체성을 침해당하는 도전에 충분한 응전을 못하고 실패한 결과, 응전에 실패한 자신을 비하 말살하고 자기를 정복한 적을 숭상 모방하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심적 기제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도층으로부터 먼저 자각을 하고 국민일반에게도 자각을 시켜 외래문화나 사상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근래에 와서 조금씩 자각이 되어가는 느낌이 있지만은 역사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마는 또한 역사는 되풀이되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사건 자체는 반복이 될 수 없고 "일회적"인 것이지만은 사건의 형식이랄까 양상이랄까 패턴(pattern)은 반복이 된다. 이것은 개인신경증이나 민족신경증이나 과거의 도전에 대해 적절한 응전에 실패를 하면 그 실패를 반복을 한다. 이것이 개인의 사주팔자요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이나 인류전체에 있어서도 과거의 문제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 적절치 못할 때에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한다. 이것이 민족의 운명이요 인류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북으로부터의 침략, 일본으로부터의 침략 서양세력으로부터의 침해다.

고구려까지는 북으로부터의 침해를 적절한 대응을 해왔으나 삼국의 각축으로 신라가 당을 끌어 들여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 또 다시 당군을 물리치고 부터는 북방에 대한 장악도 약화되고 영토도 축소되었다. 일본도 종전에는 삼국의 식민지였고 삼국의 정장(廷長) 또는 백제의 일부 같은 형태에서 한국(신라)으로부터 분리 대항을 하고 일본열도 내에서의 신라계, 백제계의 각축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이어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왜구에 시달리고 원의 침략을 받아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북방고토 회복에 대한 의식을 완전히 상실하고 한반도내에서 왜구을 다스리고 북방의 여진족을 다스리고 중국의 왕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대중국외교의 실책으로 병자호란을 겪었고 그 이전에 왜구에 대한 방심이 임진왜란을 자초하였다. 이것은 건국 초에 왜구와 북방에 대한 충분한 대비에서 출발한 조선조가 본래의 국책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조는 "소중화(小中華)" 라고 하리만큼 문화의 꽃을 피웠지만은 군사적인 면이 소홀히 되어 조선조 말에 갑자기 외부세계를 파악하기 전에 개항이 되어 세계정세를 먼저 파악하고 서양의 군사, 정치, 경제의 제국주의적 수법을 터득한 일본의 병탄되는 바 되었다. 한말의 도전은 세계정세에 무지한 조선조가 갑자기 외부세계에 노출되어 일본이나 청 또는 신부를 통해서 외부세계를 아는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동학의 봉기, 외부로부터는 청일로의 각축이 벌어져 이차의 전쟁으로 청과 노서아를 굴복시킨 일본에 대한 대비가 없이 적절한 응전을 하지 못한 결과 일본의 수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조의 몰락은 조선조 건국 초의 대북방, 대왜구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해서 일어난 비극이다. 이 점이 현재의 일본과 한국의 근본적인 차이점의 하나다. 일본은 일시 한국을 포함한 대륙으로부터의 침공의 위협을 느끼고 한때는 몽고의 침공을 받기도 했지만은 폭풍으로 위기를 모면한 경험도 있고 막부말기에 미국의 포함외교의 위협으로 일본의 근대화가 촉진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은 일본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오히려 내부에서의 상호침략 반란에 대한 경각심과 대비에 대한 단련이 잘 되어서 그런지 항상 먼저 정보를 수집하고 은밀히 사전에 상당한 기간의 준비를 한 후에 침략을 도모한다. 이것은 임진왜란이나 한말의 한국침략이나 중국침략이나 미국기습이나 현재 진행되고 성공을 하고 있는 경제침략의 수법이 동일하다. 우리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사전정보탐지, 사전공작의 계획성이 결여되고 일본의 비밀주의와는 정반대로 너무나 개방적이고 즉흥적이다.

일본식민지하에서는 일본은 조직적 체계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 축소, 열등화하고 국어교육을 폐지하고, 한국의 문화는 중국의 모방이고, 한국인은 열등하고, 민족성이 나쁘다는 교육을 한 결과 현재도 많은 교육자 각계 각처의 지도자들의 의식, 무의식 속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이것은 정말 가공할 정도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경우를 빈번히 당한다. 이완용이 존경할 인물이고 애국자다, 일본이 한국에 영국이나 다른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서 교육을 잘했다라고 믿고, 일본의 왕이 순한국인이고 일본의 문화가 고대한국인이 건너가서 일본땅에 심은 한국문화라는 말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대학교수들이 허다하고 이런 사실에 대한 진술을 국수주의로 몰아 부친다. 광복 후에 한국의 교육을 받은 세대조차도 그러한 실정이다.

이것은 광복 후 미군정이 한국인의 말보다 일본인의 말을 듣고 군정을 실시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권유지를 위해서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단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은 각계 각소에 등용, 한국사회는 친일, 친미,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처럼 되어, 민족정의가 말살되어 주체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가 아니면 국수주의자로 몰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살인범보다 더 무서운 죄가 민족반역이라고 하였는데 민족반역자를 다스리지 않음으로 해서 나라에 '죄가 없는 의식'이 무의식중에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무슨 짓을 해도 죄의식이 없어진 셈이다. 여러가지 큰 사건으로 단죄가 되는 사람들도 운수가 나빠서 단죄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단죄를 받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개인신경증환자처럼 우리의 민족신경증, 비뚤어지고 병든 우리의 사회의식은 청산되지 않은 채로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실패를 되풀이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족의 팔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겨레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옛날에는 동북아에서 제일 오래된 귀족민족 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를 건설한 민족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침략에 적절히 대응하는 전통을 망각, 모화사상과 일제하의 엽전사상에 빠져서 자기학대를 하고 있는 점이다. 임진왜란에 정신을 못차려서 병자호란을 만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철저하게 검토 청산을 못해서 한말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현재도 남북으로 분열이 되어 있고 북에서는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는 처단이 된듯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인 외교자세를 취하고는 있으나, 김일성독재와 개인숭배와 공산국내에서도 폐쇄사회로 국민의 자유가 완전 박탈된 상태다. 대한민국에서는 경제성장과 사상 유례없는 동서화합과 대규모의 올림픽을 서둔 여세로 공산세계에 개방정책을 채택하였으나, 국민과 지도층은 한말을 방불케하는 사태가 재연되고 있는 느낌이다. 내부분열과 지도층이 한말에 친로파다 친일파다 또는 친미로 갈라지듯이 일본에 매달린다 미국에 매달린다 중국이나 소련에 매달리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실패를 철저하게 직면해서 검토를 소홀히하고 과거의 대응책의 잘못과 그 원인을 밝히지 않고 또 이것을 국민교육에 반영하지 않음으로 해서 항상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자각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V. 개선방안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우리의 사회의식의 왜곡을 교정해 나갈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맘포드(Lewis Mumford)가 인용한 바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생의 진로가 위기에 봉착한 민족은 신경증환자가 그의 개인생활을 모조리 파헤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그들의 집단적인 과거에 전면적으로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에 있어서 오랫동안 망각된 상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에 우리가 과거를 이해할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미래를 콘트롤하는 통찰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과거는 결코 우리를 떠나는 일이 없으며 미래는 이미 눈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주)

신경증환자는 상처난 과거를 직면하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해서 망각이나 왜곡에 성공해서 생기는 것이다. 상처난 과거를 직면 직시해서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 고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가능한 것은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고, 신경증이 되어 상처난 과거를 되풀이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 한국이 되풀이하고 있는 상처난 과거는 무엇인가? 한때 동북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강 최고 귀족민족, 중국의 사서에 있듯이 천손족으로부터 한반도로 활동 무대도 축소되어, 북방족의 침략에 시달리게 되어 위축이 되어 스스로의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의 한국사 왜곡을 받아들이고 북방과 왜에 대한 대응하는 의식이 약화되어 외부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정보수집이나 대응이 없이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외부세계를 알 수 있었고, 외교는 고려말부터는 주로 중국과의 외교 그것도 사대적인 외교에 젖어 있었고, 조선조에 와서는 신라통일 이전에는 한국의 연장이었던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정도였다. 오늘날과 같이 전세계에 열려서 활동하는 경험이 없었다. 일본에 대한 정보에 어두워서 임진왜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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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Santayana, George : The life of Reason New York : 1925 in Mumford, Lewis : The Condition of Man, 1944, Martin Secker & Warburg LTD.


전 국토가 왜에 유린당하고 왕이 의주까지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고 명군의 참전과 의병과 이순신의 해전의 승리로서 왜군을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6.25의 상황을 방불케 하는 반복되는 양상이 아닌가?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이 난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의식개혁이 없었기 때문에 병자호란을 당한 것이 아닌가? 마땅히 북방에 대한 정세변화을 주시하고 정탐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이러한 패턴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도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 유럽이나 동남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공산국가들에 대한 민간과 정부의 정보수집의 국가이익을 위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한 의식, 국가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조선조에서 중국에 대한 사대외교만이 열려 있어 급작스런 개항에 대처를 못해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한말의 내부분열과 일본이나 노서아에 특히 지도자들이 가서 붙으려는 경향은 지금도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국력이 약하고 북방이나 왜에 대한 경각심을 게을리했고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는 서양이나 노서아의 제국주의 열강에 정보가 너무나 없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훨씬 다르지마는 외국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여러가지 정보수집이나 정보탐지나 공작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고 따라서 이러한 외국이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침투나 침략에 대해서 여전히 무방비 상태에 있다. 이러한 비자주적이고 외세 의존적이고 국가의식이 희박한 패턴을 극복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광복 후 잠깐 모든 국민이 일체가 되어 참회하고 모든 국민이 이제는 나라를 되찾았으니 평등하게 다같이 사이좋게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돌아갔으나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을 해서 신탁통치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찬탁과 반탁으로 국론이 분열이 되고 좌우로 분열이 되어 좌우 테러가 자행되었다. 남에서는 미군정이 시행되고 미군정은 일본인의 자문을 얻어서 군정을 폈고 친일파 친미파의 한국인을 주로 등용을 했고 통역정치를 실시했다. 미군정아래 대한민국 국회가 구성되고 여기에서 대통령 이승만이 선출되어 대한민국 국회가 수립되었다. 국회에서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득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민특위를 구성,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잡아들이기 시작하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를 등용한 이승만은 경찰간부가 처단의 대상이 되자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 결국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게 되었다. 이후로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논하는 자는 빨갱이, 적색분자,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사회풍토가 굳어지고 민족정기가 말살이 되고 싹트기 시작한 주체성이 상실이 되었다. 말하자면 주체성과 공산주의가 동일시되게 되었다. 반일 반미와 공산주의가 동일시된 것이다. 이로부터 일제가 체계적 조직적으로 말살 왜곡시킨 국사나 우리의 전통 심성에 대한 모습이 그대로 답습이 되고 친미적 친기독교적인 것이 추가된 셈이다. 자기해방이 아니라 자기말살과 표절문화를 가일층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공산주의나 좌익이 주체적 즉 반일 반미와 혼동이 되어 주체성 말살이 가중되었다. 공산주의자가 중심이 된 남노당 조직이 발본색원에 이르자 남북협상을 위장해서 6.25남침이 감행되었다.

6.25로 인한 남북의 물적 인적 피해는 정신적 피해까지 겹쳤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유린당한 것 처럼 UN군의 참전이 없었으면 완전히 적화통일이 완성되었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를 겪은 뒤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발췌 개헌에서 사사오입이니 불법적인 독재정치가 자행되었다. 이것은 임진왜란이 명군의 참전과 이순신의 일본선단의 궤멸로 국토가 회복되는 것을 방불케 한다. 말하자면 전쟁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반복된 셈이다.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불법 부정 독재에 억눌렸던 울분의 폭발이 미국정부의 가세로 학생 교수의 봉기로 인해서 이승만이 하야하고 허정 과도정권을 거쳐서 민주당정권이 탄생하자 곧 민주당은 신구파로 분열이 되어 다투고 정부수립 후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해도, 무질서와 혼란이 초래되어 학생들은 남북통일을 위해 판문점으로 간다하고 각계각층의 누적된 불만이 데모나 집단행동으로 터져 나와 민주당 정권이 질서를 잡아 보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자 소수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감행 성공을 시키게 되었다.

이것은 고려의 정중부의 난과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고 박정희의 원주 발언에서 잘 나타나 있다. 미군정하에서 국방경비대로 출발한 국군은 광복군 출신도 많았지만은 일본군이나 만군출신이 지배세력이고 좌익세력의 피신처 또는 공작침투의 대상이었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직장을 구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독립투쟁을 한 명예로운 존경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다니면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반국민시당하는 온전한 국민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6.25전에는 있었다. 6.25로 인해서 군인의 지위가 향상이 되었으나 별을 달려면 국회의원이나 민간정치인에 여러가지 수모를 참아야하고 한국중립화의 남북통일이 되는 날이면 군인은 위치가 크게 위협을 받게 된다는 불안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생각이 된다. 민주당정권의 붕괴도 역시 내부분열과 정보에 어둡고 무방비라는 패턴의 반복이다.

박정권은 구악을 일소하고 민생을 도탄에서 구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출발은 했지만은 비판을 봉쇄했기 때문에 구악을 뺨치는 부정 부패와 사회악이 창궐하여 국민의 힘을 선거로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소위 10월유신으로 독재를 강화하였다. 독재의 더 이상 유지가 내외의 압박으로 어렵게 되자 10.26이 터지고 독재자의 사망에 따른 독재의 계승이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국민이나 지도자의 자각의 결여로 12.12가 터지고 5.17, 5.18로 이어지고 6.29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우리가 충분한 자각까지는 못하고 대외적 대내적 자각이 훨씬 과거보다는 진전이 되고 있음을 본다. 첫째로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대외 종속내지 의존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의 증대다. 미국이나 일본은 항상 자국의 국가이익을 목적으로 대한정책을 수행하는 것이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친구니까 도와주는 관계가 아니라는 자각이 싹트고 확산되어가고 있다. 물론 과거의 불건강한 주체성이 결여된 친미 친일의 잔재가 광범하게 존재하지만 주체적인 자각이 태동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이 자칫하면 운동권학생이나 소위 제3세대의 학자들처럼 주체적 민족적 민주적인 자각이 민중독재니 프로레타리아독재니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낙착이 되는 것은 한말에 비유하면 친로로 기울어지는, 친미 친일 대신 친로를 택하는 의존과 종속의 대상이 바꾸어질뿐 의존이나 종속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극복해야 할 문제는 대외적으로는 의존과 종속을 벗어나 대등하게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지도적인 입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역량에도 달려있기도 하고 우리들의 현재의 역량과 잠재적인 역량에 대한 자각, 역사의 흐름과 세계정세와 그 변동에 대한 신속한 파악과 앞을 내다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러기 위해서는 의존적 종속적인 친일 친미, 친소, 친중, 친영, 친독, 친불 등등의 인사들이 주체적 국가의식을 가진 지일, 지미, 지소, 지중, 지영, 지독, 지불 등등으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우리가 반복해 오고 있으면서 지금 처음으로 국민의 성숙을 바탕으로 자각이 한걸음 진전을 보고 있는 움직임을 더욱 부각시켜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부분열의 패턴과 자유와 독재 민주와 쿠데타의 반복이다. 그것은 방종과 단압(斷壓)의 반복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기로에 서 있다. 방종은 단압에 대한 반동이요 독재자와의 동일시의 현상이기도 하다. 단압을 풀어주면 과거에 자기를 탄압한 독재가 하는 식으로 행동을 한다. 자기가 당한대로 남에게 돌려주는 악순환을 탈피를 해야한다. 이러한 탈피가 진정한 민주화로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민주화 운동이나 모든 운동이 북의 김일성에 의한 공작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과 대응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되는 점이 단순한 구두선적(口頭禪的)인 반공(反共)이 아니라 구체적인 분석을 통한 계몽과 교육이 절실히 요망된다. 우리의 민주화나 통일은 30년 가까이 군사독재하에 살아 왔기 때문에 특히 젊은 세대들은 광복후의 역사나 6.25에 대한 체험이 없고 일방적 정보만 주입을 당해서 공정한 판단력을 결여하고 있는, 수적으로 우세한 세대의 계몽 교육을 바로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사교육을 통해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고대에서는 우리 동이문화를 중심으로 서역문화를 흡수한 것이 오늘날의 이른바 한문화라는 것을 교육하고, 일본문화는 한국인이 가서 심은 한국문화의 변형이요 일본의 왕이나 과거의 지배층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교육을 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 일제하 광복 후의 역사를 주체적 입장에서 기술해서 교육을 해서 바른 한국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문제는 각계각층을 지배하고 있는 식민교육을 받은 지도층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해온 것처럼 반복해서 새로운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과거의 타성에 빠지지 않게 방지를 해야 한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느냐 아니면 이러한 과제를 잘 풀어나가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과거의 실패로 돌아가는 길은 내외의 정세 내외의 공작에 대한 감시와 파악의 결여로 국가적 자주의식, 국민적 자주의식의 결여로 내부분열과 외세의존 종속으로 가고 민주화의 실패로 군사독재가 아니면 적화통일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세계 무대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길은 참된 한국상, 한국인상을 되찾아야 된다. 중국이나 일본 특히 일제하에 이루어졌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말살교육의 잔재를 청산을 해야한다. 이것은 일제가 어떠한 방법으로 조직적 체계적으로 우리에게 심어준 민족말살을 성공시켰는가를 온 국민에게 교육을 해야한다. 불행히도 현재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은 주체성이 없는 서양중심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운동과 계몽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대를 바로 쓴 주체적인 국사를 교육을 해야 한다. 유길준이 100년전에 갈파하고 일제가 역으로 이용한 국사, 국어, 과학교육을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일제는 이 세 가지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박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광복 후 우리나라 정부나 교육자는 이에 대한 자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일제잔재가 건재하다는 증거다. 국사교육이 교과서 편찬에서 표류중이고, 국어는 일제하의 국어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어의 침투 외에는 일본어의 침투가 없었는데 광복 후 특히 1980년대에 일본서적의 대량번역 출판 그것도 일어도 국어도 잘 모르는 번역자가 번역해서 유포가 되어 거꾸로 국문학 교수들까지도 일본화된 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국문학 교수를 위시해서 대다수 국민이 자기도 모르게 따르고 있다. 이것은 사회풍토가 일본이나 일본어에 대한 경각심이 없고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실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를 잊지 못해서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이 두 가지가 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강력하고 의식적 노력과 정부의 방침, 지도층 교육자의 각성이 없이는 국어의 일어화는 극복이 어렵고 대청소가 필요하다.

과학진흥은 정부나 기업체에서 경제발전의 차원에서 크게 힘쓰고 있으나 과학진흥의 기초가 되는 과학교육에 대해서는 국사나 국어교육이나 마찬가지로 등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의식적으로 보면 일제에 대한 비판의 결여, 일제잔재, 국가 국민의식의 부족, 주체성의 부족의 증거라고 보아야 한다.

이상 본바와 같이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상황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아마 800년전에 몽고족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륙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전세계가 통일된 이래 전세계가 하나가 되려는 움직임의 시발점에 있고 동서가 통합되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교류가 많아지고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민주적인 정치와 언론자유를 지향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일본이 세계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듯한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군사대국으로 까지 부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세계 역사의 흐름과 정세하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위치를 확보하면서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는 우리의 몫이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냐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요망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혼란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 방향감각의 불확실에 기인한다.

우리의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제도나 사상이나 문화가 한말 이전에도 뿌리가 있으나 주로 한말에 서양문명과 그 아류인 일본의 침략의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한국을 소위 근대화된 또는 근대화되어 가는 한국이라면, 한국의 근대화는 자주적인 주체적인 근대화가 서양이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좌절되고 제국주의에 예속되는 근대화다. 기독교의 선교활동과 일본제국주의 식민교육의 소산이고 따라서 극단적인 표현을 쓴다면 표절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한말에 일인이 쓴 한국사의 교과서를 학교에서 가르친다거나 최남선이 일본의 잡지나 서적을 사서 번역 소개하는 전통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서양이나 중국 심지어 한국까지도 일본이나 다른 외국인의 연구를 통해서 배우고 현재도 모든 방면이 그러한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대중매체가 일본과 미국의 형식과 내용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은 전문가의 연구에서도 잘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일제잔재의 청산이고 표절문화의 청산이다. 이 두 가지는 발생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를 캐면 다른 것도 다 따라 나오게 되어 있다. 공격자와의 동일시의 심적 기제로서 "침략자와의 동일시", 자기자신을 말살하고 침략자를 숭상 모방하는 행동 패턴을 밝혀내면 뿌리가 같다는 것이 드러난다. 모화사상, 서양숭상, 일본숭상의 뿌리는 일제잔재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제잔재 청산의 작업이 곧 주체성 민족정기의 회복이 된다.

민족말살 외국숭상의 심리는 일제시대, 광복 후 상당한 기간 사용된 "엽전" 이란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일체의 한국에 관한 것, 한국의 역사, 전통, 민족성이 가치가 없고 중국이나 서양, 일본의 것이 가치가 있다는 심리가 뿌리깊이 일제에 의해 또 스스로에 의해 심어진 병의 뿌리를 뽑는 작업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렇게 민족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함과 동시에 고대로부터 동이가 동북아세아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민족이고 천손족이라고 일컬어졌고, 중국문화의 핵심을 창조했고, 일본의 건국, 일본문화를 창조한 주체라는 것을 밝혀, 자라나는 국민교육과 기성세대의 계몽에 힘써야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한국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의 핵심이 인(仁)이고 홍익인간정신(弘益人間精神)이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고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제창된 나라라는 것이 부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문화를 말살한 결과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되었다는 말이 오래이지마는 우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심성은 정치와 교육을 바로 잡음으로서 쉽게 회복이 된다. 한국인처럼 순하고 교육이 잘 되는 국민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우리 국민은 바른 지도를 잘 따른다. 정치와 교육부재의 소산으로 현재의 여러가지 혼란이 초래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국사 국어를 회복하고 과학교육을 힘쓰면 자연히 표절문화를 극복하고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인 한국문화가 각분야에서 소생이 될 것이다. 우리 속에 흐르고 있는 홍익인간, 인의 정신이 국내외적으로 발휘가 될 것이다. 사실은 이미 발휘가 되고 있는데 주목을 하고 있지 못할 따름이다. 서양문화는 소외문화고 우리 문화는 관계문화라는 것을 인식을 시킬 필요 또한 크다. 라이샤우워 교수가 지적한데로 21세기에는 동북아에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고 예견하면서 과거에 동양문명이 가는 곳마다 토착문명은 없어지고 서양문명이 지배했었는데 동북아의 전통과 서양의 과학문명이 융합을 함으로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고 하였다. 동북아의 전통의 핵심은 인(仁)이고 도(道)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목을 하고 자각을 해야 한다.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서양문명에 압도되어 뿌리깊은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아세아를 멸시하고 서양을 모방하는 공격자와 동일시의 심리기제로 탈아 서양화에 힘써 청일, 노일 전쟁으로 한반도와 만주에서 청로세력을 몰아내고 만주와 한국에 병탄 침략을 확대하다가 패망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는 경제를 통한 세계침략을 착수, 진행,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인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군사적인 침략과 같은 운명에 도달되는 것이 필지라는 것이 예견이 된다.

중국은 일본보다 인의 정신이 있으나 한국보다는 약하고 국토가 넓고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한국을 앞서 있는 분야도 있지마는 한국의 전단계에 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오는 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서양이나 일본의 모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중국보다는 여유있게 한발짝 앞서 있는 감이 있으나, 전통에 대학 각성보다 서양이나 일본 모방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경기나 올림픽과 경제발전으로 과거 25년간 가장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 후진국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표선수 경제발전의 모범국, 동서를 화합시킬수 있는 국민이라는 것이 부각이 되고 근래는 경제 기적 뿐만 아니라 정치 기적까지 이룬 나라로 칭송되었으나 최근에는 학생 데모와 노사분규의 폭동화로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지려고 하고 있다. 동서융합의 새로운 문명이란 바로 한국의 인, 홍익인간의 전통과 서양의 과학문명의 융합이라는 것을 안다면 바로 한국인의 세계사적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려면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고 긍정적 유산을 발굴 계승, 세계에 보급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혼란은 광복 후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숙청하지 못함으로서 일제잔재를 청산 못하고 4.19, 5,16, 5.17, 5.18 등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독재, 자유, 군사독재의 반복되는 악순환을 우리가 끊는 작업을 성취시켜야 되고, 이것은 국민각자에 스며있는 일제잔재와 독재의식을 정화해야만 된다. 이것은 일제와 광복 후의 역사의 조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광주사태에 대한 해결은 한풀이가 옳지 못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되어가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나 정신치료에서는 환자의 한이나 적개심이나 감정 일반을 환자가 정화시킬 수 없는 정도로 격화시키면 자기파괴적인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감정표현은 이해를 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는 정도로 표출되어야지 그 이상을 하거나 충족을 목표로 하면 자학으로 끝이 난다. 소위 지역감정은 정치인의 선동의 산물인 만큼 백해무익이고 언론자유와 지방자치로서 소리없이 민주적으로 해결될 문제다.

또 한가지 한민족의 세계사적 역할과 수행을 방해하는 요인은 북의 적화통일정책이고 남한에 대한 교란작전이다. 이것은 남북교류로서 우리 민족의 사명에 대한 계몽과 이북의 민생문제 해결을 도와주고 외국에 대한 대응을 보조를 같이 하게 하고 적화통일의 야욕을 포기케 하는 작업이 꾸준히 대내외적으로 추진되어야만 우리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안녕하십니까? 치과의사 홍성우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와 같은 첨단 시술이 행해지고 또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해도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으며 의학은 그야말로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의 정체가 드러났고,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과학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과질환인 충치 그리고 풍치 역시 교합과 관련지어 발생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교합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질환들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는데, 이런 재미난(?) 치과이야기들을 치과의사가 아닌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이 좋은 치료를 위한 눈과 귀가 되어드리기를 희망하면서 두 권의 책을 2012 년, 2014 년에 출간했으며, 2023 년 11 월에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1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2


홍성우의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개정판


잘 닦는데 왜 썩어요?

왜 혼자만 치아가 잘 썩을까요? 치료받은 치아가 또 썩는다면 정말 안닦아서 그럴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치과의사들도 충치가 있답니다.
남들은 찬물을 잘 마시는데 왜 혼자만 치아가 시릴까요? 그리고 신경치료를 해서 아예 시린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치료가 정말 좋은 치료일까요?
왜 음식물이 혼자만 잘 낄까요? 치과에서는 인공치를 하라거나 두 개를 붙혀서 아예 끼지 않도록 하라는데 그게 맞는 치료일까요?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면서 치아들을 뽑으라는데 정말 뽑지 않고서는 교정치료가 불가능할까요?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은 많은 의료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정보를 가려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알기 쉬운 치과상식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치과상식을 소개드리며, 좋은 치료 그리고 꼭 합당한 치료를 받으시길 소망해봅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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