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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의 사회의식에 관한 진단과 개선1

2005.12.02 17:25

장봉현 조회 수:9981


지금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내용인것 같아서 올립니다.
이 동식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분은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십시요.
http://www.taopsychotherapy.org/rhee/05_sub_010_list.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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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인의 사회의식에
관한 진단과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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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 동 식 (정신과의사, 의학박사, 한국정신치료학회 명예회장)

  
I. 서론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종전의 질서나 환경이 달라지고 내부적 외부적 조건의 변동, 즉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의식의 변동이 없이는 개인이나 집단은 멸망이 있을 뿐이다. 과거에 동서의 역사나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의식 개혁이 요청되었고 부르짖어졌다. 성공이 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과거에 의식개혁, 특히 집권층이나 지도층의 의식 개혁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의식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에는 나라가 망했다. 가깝게는 한말과 일본의 한국 병탄(倂呑)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의식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으로 위기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창호, 이광수, 최현배와 그 이전 또는 그 이후에도 우리의 의식을 개혁하자는 논설과 운동이 있어 왔고, 재건국민운동이 있었고 새마을운동, 사회정화운동이 있었고 여러 가지 논설도 있어 왔다. 정신의학, 정신분석, 도를 공부하는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피상적이고 격화소양의 느낌이 있다.

필자가 본 연구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종전에 없던 과학적인, 정신의학적인, 정신분석적인, 도(道)적인 진단과 처방을 제시해 보자는 것"이다. 먼저 의식의 진단과 개혁의 원리를 제시하고 이 원리에 입각한 현대한국인의 사회의식의 핵심의 진단과 치료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의식의 진단과 의식개혁의 과학(科學)적, 도(道)적 원리


사회의식의 진단은 많은 조사와 연구가 근자(近者)에 나왔으나 이러한 사회의식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그 뿌리는 깊은 무의식 속에 잠겨 있다. 비근한 예를 든다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삼학년의 학생이 책상 앞에 앉아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정신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성적이 자꾸만 떨어진다는 경우다.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잘 안된다. 잠이 안온다. 잠이 너무 온다. 또는 공부는 않고 탈선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겠다. 이러한 경우에 정신과의사는 우선 신체적인 고장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 신체적인 원인이 없으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증세를 빠짐없이 청취하고 증세가 나타난 순서와 그 증세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밝히고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어떠한 갈등이 있었나를 밝히고, 그러한 갈등이 생기기 전의 환자의 성격이 어떠하였는가 그러한 성격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가를 살핀다. 가장 철저한 정신치료인 정신분석치료에서는 발병 당시의 갈등의 원형이 이미 어려서부터 형성되어서 이러한 갈등을 중심으로 성격이 형성된 것을 알아내서 이것을 교정한다. 앞서 말한 학생의 경우라면 공부가 안되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어머니가 데려왔는데 몇몇번 면담을 한 결과 환자는 누이가 하나 있는 외아들이며 어려서 아버지 앞에서 남의 흉내를 내다가 꾸중을 듣고서는 늘 아버지가 무서워서 필요한 말 말고는 하지 않고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어머니는 늘 말하기를 '아들이 너 하나 뿐이니 책임이 무겁다. 좋은 대학의 의과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모에서 오는 중압감때문에 늘 부담감을 안고 공부를 하기 때문에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잡념때문에 공부가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통칭 "고3병"의 정체다.

이상을 정신의학에서는 역동진단이라고 한다. 정신의학의 진단에서는 임상진단과 역동진단, 두가지를 하게 된다. 임상진단은 증상을 관찰 기술해서 병명을 붙이는 것이고 주로 약물치료에는 꼭 필요하다. 역동진단은 정신분석적인 진단이고 정신분석치료나 정신치료에 꼭 필요하다.

이것을 다시 세분해서 발생진단과 좁은 의미의 역동진단으로 구분한다. 발생(genetic)이라 하면 정신분석의 이론으로 인간의 정신 인격을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나누고, 구조적으로는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세 가지로 나눈다. 본능이란 여러 가지 욕망, 충동을 말한다. 자아는 본능을 억압하는 양심인 초자아와 본능, 현실(환경) 셋을 지각하고 조정하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발생진단이란 이 세 가지 심적 장치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밝히는 통시적(通時的)인 역사적 진단이다. 좁은 의미의 역동진단은 공시적(共時的)인 진단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일정한 정도와 방향으로 발달된 현재의 환경, 본능, 자아, 초자아의 힘의 상호관계를 진단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말한 학생의 경우라면 학생이 호소하는 증상으로 보아서 정신신경증이라는 임상진단이 붙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 특히 어머니의 과보호로 말미암아 자아가 약한 상태에 있고, 동시에 이러한 부모의 태도가 내재화되어 초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본능과 자아를 억압하여 현실처리를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역동진단이다.

그러면 이러한 진단을 토태(土台)로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첫째로 정신분석을 하는 치료자 즉 분석자는 환자의 증상이나 고통의 원인이 되는 핵심적 감정, 이런 감정이 생긴 어려서의 가족관계를 분석자가 파악한다. 다음으로 분석자는 환자로 하여금 이것을 자각케 한다. 다음에는 환자가 이러한 감정을 분석자에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분석자가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는 환자로 하여금 자기가 자라날 때 부모형제나 그 대리자에게 느꼈던 이러한 감정을 분석자에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자각시킨다. 마지막으로는 환자가 분석자에 대한 강렬한 핵심적인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이 감정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분석자나 환자나 고비를 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깨달음으로서 낡은 유아적이고 신경증적인 습성을 벗어나는 극복 내지 훈습(薰習)(working through)만이 남게 된다. 물론 이러한 핵심적 감정은 환자의 전인격 일거수 일투족(全人格 一擧手 一投足)에 침투되어 환자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분석치료의 과정을 불교에서 도를 닦아서 각을 얻어 보살이 되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와 비교해 보면, 우선 십우도의 첫째는 소를 찾아 나선다(심우(尋牛)). 다음은 소의 발자국을 본다(견적(見跡)). 소를 본다(견우(見牛)). 소를 잡아 고삐를 단다(득우(得牛)). 다음은 소를 먹인다(목우(牧牛)).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잊고 사람만 있다(망우존인(忘牛存人)). 사람도 소도 다 잊어 버린다(인우구망(人牛俱忘)).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다(반본환원(返本還源)). 마지막으로 보살이 되어 시정으로 돌아가서 중생을 제도한다(입전수수(入廛垂手)). 소는 자기의 마음이다. 불가에서는 처음에 보는 소는 검은 소라고 한다. 이것은 신경증은 자기의 절실한 감정 특히 사랑받고자 하는 대상에게 자기가 바라는 만치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적개심이 생기고, 적개심을 표현을 하면 더욱 사랑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적개심을 억압해서 증세가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무엇이든지 표현을 하라고 하면 이 억압된 적개심이 나타난다. 환자가 정신건강을 회복하려면 먼저 이 적개심이 나타나서 표현이 되고 원인을 깨닫고 없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검은 소는 부정적인 감정, 증오심이고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핵심적 역동, 핵심적 감정이다. 여태까지 이 핵심적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다루는 것을 배운다는 것과 조복(調伏)은(앞서 말한 극복훈습(克服薰習)과 같음) 득우, 목우, 기우귀가에 해당하고 망우존인, 인우구망, 반본환원은 진정한 자기를 찾는 것이다. 도를 닦으면 검은 소에 흰 점이 생겨서 흰 부분이 확대되고 나중에는 흰 소(노지백우(露地白牛))가 된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파괴적인 감정 즉 증오심이 없어지고 건설적인 사랑의 감정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긍정적인 힘의 성장이다. 입전수수는 성숙된 분석자가 되어서 남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에 해당한다. 물론 (주)보스(Medard Boss)가 지적했듯이 정심(淨心)의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최선의 정신분석 수련도 입문에 지나지 않는다.

(주)대혜선사는 애응지물(碍膺之物)이 없으면 각(覺)이라고 했고 깨달으면 꿈에서도 현실을 보는 몽각일여(夢覺一如)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선가에서는 살부(殺父), 살모(殺母), 살불(殺佛)까지 해야 각(覺)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에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한다는 것과 상응한다. 불서에는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우무위(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于無爲)"라는 (주)노자 "도덕경(道德經)"의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개념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공부할수록 지식이 불어나는데, 수도를 하면 나날이 신경증적인 욕망이나 동기가 줄어들어 그러한 동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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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Medard Boss : Indianfahrt eines Psychiaters, Verlag, Hans Huber, Bern, 1976.
(주) 대혜선사(大慧禪師) : 서장(書狀)
(주)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


완전히 없는 무위(無爲)에 이른다는 뜻이다. 무위란 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집착하는 함이 없는 뜻이고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인 것이다. 서양의 정신치료자들은 관계라는 것은 지각이 될 뿐이지 개념화할 수 없다. 이론과 기술을 떠나야 한다. 이론과 기법 뒤에 치료자가 숨는다는 주장이 여기에 관련된다. 참선(參禪)의 십병(十病)을 대치하는 삼현문(三玄門)을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불교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초현문(初玄門)인 체중현(體中玄)은 불교의 최고 이론인 '화엄경(華嚴經)'을 개념적인 지식으로서 파악한다. 다음은 구중현(句中玄)으로 이 지식을 떨어버리기 위해서 선문답(禪問答)을 한다. 선문답에는 생각은 없으나 말이 남아 있어 말을 떼기 위한 현중현(玄中玄)이 있다. 뭐라고 물으면 대답을 않는 묵연(默然), 한참 대답이 없는 양구(良久), 꽥 소리를 지르는 할(喝), 몽둥이로 치는 방(棒), 책상을 치는 격선상(擊禪床) 등이 있다. 초현문에서는 불법대의(佛法大意)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교리를 가지고 대답을 한다. 이것은 죽음 말(사구(死句))이다. 구중현에서는 뜰 아래 잣나무니 마삼근(麻三斤)이니 해서 교리 즉 지식을 여의고 눈앞의 현실(here and now)을 가리키니 산 말(활구(活句))이라고 한다. 현중현은 불교의 핵심이 자심반조(自心返照)이니 쓸데없는 소리말고 네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수도의 목표인 이언절려(離言絶慮)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고려 (주)보조국사는 법어 중 '진심험공(眞心驗功)'에 보면 "어떤 이가 이르되 진심이 앞에 나타나매 어떻게 이 진심이 현전(現前)함을 얻을 때에 다만 습기를 제하지 못하여 만일 익숙한 경계를 만나면 유시에 생각을 잃나니 소를 먹일 제 비록 조복(調伏)해 끌어 수순(隨順)하는 곳에 이를지라도 오히려 감히 채찍 줄을 놓지 말고 바른 마음이 조순(調順)하고 걸음이 평온하여 소를 몰아 묘가(苗稼) 가운데 들게 하더라도 묘가를 상하지 않음을 기다려서야 바야흐로 감히 놓음과 같은지라. 이 지보(地步)에 이르러서는 문득 목동의 채찍 줄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히 묘가를 상함이 없을지니 도인이 진심을 얻은 후에 먼저 또 공부를 써 보양(保養)하여 큰 역용(力用)이 있어야 바야흐로 가히 중생을 이(利)하게 함과 같나니 만일 이 진심을 시험할 때에 먼저 평생에 미워하고 사랑하는 바 경계를 가져서 때때로 낯 앞에 생각해 두되 만일 전(前)을 의지하여 증오심이 일어나면 곧 도심이 익지 못함이요 만일 증오심이 나지 않으면 이 도심이 익음이니라. 비록 이같이 성숙하나 오히려 자연히 증애(憎愛)를 일으키지 않음이 아니니 또 다시 마음을 시험하되 만일 증애의 경계를 만날 때에 특히 증애심을 일으켜 증애의 경계를 취하려 하여도 만일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마음이 거리낌이 없음이 드러난 땅의 흰 소와 같아서 묘가를 상하지 않을지라. 옛적에 불을 꾸짖음이 있는 자는 이 차심으로 더불어 서로 응함이어늘 이제 보건대 겨우 종문에 들매 도의 원근을 알지 못하고 문득 불을 꾸짖으며 조를 꾸짖음을 배우는 자는 너무 이른 (주)계교(計較)니라" 라고 도의 미숙, 성숙, 무애(無碍)의 세 가지 경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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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보조법어
(주) 계교 : 깨달음이 아니고 생각 뿐이라는 뜻

증애의 집착이 없어져야만 무애(無碍)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나 불교에서나 인생고 모든 갈등이나 착각이 증애(憎愛) 즉 갈애(渴愛)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힌 점이 일치한다. 유아적인 의존심(갈애)이 충족이 되지 않아서 적개심이 생긴다. 증애가 일어나지 않고 자비심만이 있는 것이 최고의 정신건강, 부처의 경지다. 삼조 승찬대사도 '신심명'에서 "단막증애(但莫憎愛)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고 갈파하고 있다.(주)

서양의 정신분석이 주로 개인적인 정서적인 문제를 해소시킨다면 선은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별업망견(別業妄見)과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동분망견(同分妄見)의 베일을 걷어 치우고 생사지심(生死之心)을 타파해서 유기체의 베일마저 없앰으로써 현실과 나를 직결시키서 진여(眞如)에 이르는 것이 목표다

보살이란 부처 다음으로 최고로 도가 높은 경지를 말하는데 이것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성숙된 분석자의 기술과 유사하다. 불교에서 자각자(自覺者)라야만 각타(覺他)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일치한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보면 부처의 바로 전단계인 보살은 상속식 지식, 전식(轉識)이 정화되어 이를 벗어나고 업식(業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자각하고 업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업식이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에 해당된다. 업식이 완전히 정화가 된 백정식(白淨識)이 부처의 경지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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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사랑과 미움이 없으면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과 미움으로 현실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석자가 자기의 신경증적인 동기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이것을 자각하고 이것의 지배를 받지 않고 투사를 하지 않는 것과 보살이 전식이하가 완전 정화되고 업식이 좀 남아 있다는 것과 같다. 성숙된 분석자는 자신이나 가족 피분석자 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 전인류에 대한 사명감을 느낀다. 이것은 보살행(菩薩行)에 해당한다. 환자와 자기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자기가 높은 자리에서 치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중생이란 생각을 내지 않고 (불취중생상(不取衆生相)), 제도하고 있다는 생각(용상(用相))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

도는 누구나 불성 성인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부처, 성인, 진인이 되는 것이 목표이지만 서양의 종교나 정신분석은 방향은 도와 같으나 높이가 낮다. (주)틸리히 (Paul Tillich)는 무(無)를 받아들임으로써 유신론적 실존주의에서는 신들 위의 신을 만나지만,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는 자아를 만난다는 표현이 도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동양의 선불교에서 의식이 정화되는 과정이나 정화의 목표와 정도, 정화의 핵심을 기술하였으나 의식의 정화를 돕는 치료자나 보살과 도움을 받는 환자나 중생에 대해서 몇가지 첨가하고자 한다.

서양의 정신분석치료나 수도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치료자와 피치료자의 관계가 먼저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치료나 중생제도의 출발이 된다. 부처도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를 못한다. '수연응기제도(隨緣應機濟度)'란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주). 연(緣) 즉 관계는 치료자의 인격이 좌우한다. (주)스트럽(H. Strupp)의 미국에서의 과거 40년 이상의 정신치료에 관한 연구 결과 정신치료의 성과는 치료자의 사람됨이 좌우하고, 어떤 이론이나 학파나 어떤 기관에서 수련을 얼마나 받았는가는 문제가 안되고, 오로지 누가 하는 정신치료가 효과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해야지 다른 종류의 질문은 정신치료가 효과가 있나 없나를 판정하는데 전혀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종전에 서양의 정신치료자들이 인격이 결정적이다, 인격이 인격을 치료한다는 융(Jung)의 주장이나, 정신치료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은 치료자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크렛치마(Ernst Kretchmer)의 말, 랭(R. Laing)이 인도에 가서 2년간 도를 닦고 나와서 인도의 여자도사가 이상적인 치료자다, 함이 없이(무위) 존재함으로서 치료가 된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치료자의 인격이 치료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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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Tillich, Paul : The Courage To be, Yale University Press, 1952.
(주) 정신분석, 정신분석치료가 가능하려면 치료자와 환자와의 관계의 성질 및 환자의 자아의 힘에 좌우된다. 연이 관계고 기가 근기(根機) 즉 자아의 힘이다. 관계가 믿음이 강할수록, 근기가 클수록 치료가 쉽고 빨리 된다. 관계와 근기에 맞게 치료하는 것이 근본이다.
(주) Strupp, Hans. 'Letters', Science, Vol., 207, No. 4431, P 590, 1980, Feb., 8.


일치한다. '금강경' 야부송(金剛經 冶父頌)에 "정인설사법 사법실귀정 사인설정법 정법실귀사(正人說邪法 邪法悉歸正 邪人說正法 正法悉歸邪)" 라는 표현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주). "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론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옳지 못한 것이 되고 바른 사람이 옳지 못한 이론이나 방법을 쓰면 바른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도나 정신치료에서는 특히 도사나 선사, 군자, 치료자는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앞에서는 도가 닦아져 가는 과정과 정신치료가 되어 가는 과정을 십우도와 정신치료의 과정을 비교를 했었지만, 다음에는 참선에서 각(覺)에 이르는 과정을 360도를 도는 것과 정신치료 과정을 비교해 볼까 한다. 참선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고 한다. 이것은 0도의 경계다. 이것은 정신치료에서는 환자가 처음에 치료자를 찾아 왔을 때의 상태다. 어떤 학생환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본다면 처음에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부모고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느끼고 생각하는 데로 마음놓고 얘기를 하게 하면 어머니에 대해서 언짢은 느낌이 있다고 시작해서 치료가 진행함에 따라서 어머니에 대한 미운 감정이 점점 고조되어 나중에는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경계가 180도 경계이고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경계고 완전한 가치의 전도가 일어난다.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어머니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360도 경계이고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출발점인 0도 경계의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란 것과는 다르다. 0도 경계에는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고 왜곡된 어머니, 왜곡된 현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억압된 상태였던 것이 360도를 돌고 나면 억압이 없는 왜곡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고 현실이다. 이것이 진여(眞如)고 각(覺)의 경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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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Jung의 저서(Psychologische Betrachtungen, Rasher Verlag, Zurich, 1945)에도 번역 인용되고 있지만 정신치료는 치료자가 정인(正人) 바른 사람이라야 한다. 사된 사람이 아무리 바른 이론을 설해도 사된 이론이 되고 잘못된 이론이라도 바른 사람이 말하면 바른 것이 된다는 뜻.


이상은 불교의 수도와 정신분석치료를 비교하면서 의의의 진단과 정화의 가장 극치를 기술하였다. 진정한 완전한 의식개혁은 부처나 성인이 되는 것이고 지극히 어려운,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철저한 정신분석적인 치료 이외에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의식을 개선하는 방법을 들어보면 조건반사나 학습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행동치료가 있다. 이 밖에 암시를 사용하는 최면치료, 다음으로는 집단치료나 정신연극이 있다. 가족치료, 내담자중심치료, 단기정신치료, 위기개입이 있다. 이상은 정신치료의 종류이나 이외의 많은 종류가 있으나, 대체로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정신적인 방법이 아닌 물질적인 신체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기질치료에는 항정신병약물, 항우울약물, 소정신안정제, 진정제, 수면제, 마취요법, 전기경련요법, 정신외과 (뇌수술) 기타의 기질치료가 있다.

정신분석과 같은 철저한 치료가 아닌 치료는 환자의 동기나 능력, 여러가지 현실여건에 따라서 맞게 적절한 치료를 하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을 동시에 또는 시기에 따라서 다른 방법을 쓰기도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최대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상의 설명은 우리나라 국민을 일일이 도를 닦게 할 수도 없고 모든 국민을 정신분석치료를 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진단과 치료에 임해야만 가장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기술한 것이다.

의식의 개선, 치료, 개혁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의 핵심인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로서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정신분석이나 동양의 도에서나 공통적으로 알게된 것은 사람은 자기가 깨닫지 못한 자기의 마음을 타인이나 외부에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 투사라고 한다. 수도나 정신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투사를 없애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마음을 관찰해서 깨닫고 집착되어 있는 애응지물(碍膺之物), 콤플렉스(complex)를 해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심반조가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못하는 사람이 현실을 잘못보고 착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 사회적 갈등이 생긴다. 자기가 사치를 하면서 남에게 사치를 말라는 식이 된다. 스스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치료자 또는 참선에서는 선사가 된다. 자각자(自覺者)라야만 각타(覺他)를 할 수 있다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치료자는 먼저 이미 자기를 깨달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를 깨달아야만 타인이 자기를 깨닫게 도와줄 수가 있다. 이러한 도움을 줄 수 있을려면 먼저 도움을 받을 사람의 신뢰와 존경을 획득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치료자의 성실성이 제일 중요하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다음으로 지도받는 사람의 인격을 무조건 존중해야 하고, 정확하게 피지도자,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무슨 말이 나와도 동요되지 않고 환자가 마음놓고 자신의 느낌, 생각, 행위를 표현, 소유할 수 있게 도와주고 따라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게 도와준다. 이렇게 하면서 치료자는 환자에게 환자가 본받을 모범이 된다.

이상 인간의 의식을 진단하고 개혁 치료하는 여러가지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개관하였으나 다음으로는 과거 특히 가까운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선인들이 시도한 방법 현재 우리가 사회적으로 시도해 온 방법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III. 선인(先人)들의 의식개혁과 현재의 시도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한 국가나 민족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반드시 의식 개혁이 부르짖어지고 개혁이 성공되는 경우도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거나 성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성공한 경우에는 좋은 지도자, 다시 말하면 성인에 가까운 지도자를 만났을 때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국민을 이끌어 가서 태평성대를 누렸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나라가 망하거나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일쑤였다. 고구려의 멸망이나 백제, 신라, 고려, 조선조의 멸망이 지배계급의 의식이 타락하거나 충신이 있어도 왕이 암우(暗愚)해서 의식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과거인 한말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를 연결시켜서 고찰해 보기로 한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에 이미 이이(李珥)의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을 비롯하여 왜구에 대비할 것을 주장을 했고 그 후에도 수신사가 일본을 다녀와서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국왕에게 상반되는 보고를 하고 1년이 조금 지나 왜군이 대거 침입 7년간이나 왜군에 의해서 국토가 유린당하고 문화재가 소실되고 의병과 이순신과 같은 명장과 명군(明軍)의 개입으로 왜병이 물러간 후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없다가 28년 만에 정묘호란을 당하고 또다시 1637년에 병자호란을 당하고 인조가 청태조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하고도 의식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말에 와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참담한 결과도 빚고 말았다.

병자호란 후에 북벌론, 영.정조에 이르러 실학(實學)이 대두되어 의식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나라를 건질 수는 없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위정척사(衛正斥邪)와 개화파의 대립, 동학을 진압하기 위해서 외군(外軍)을 도입 민족정기를 압살하고 나라가 일본에 병탄되자 의병으로 투쟁하다 마침내 일본을 물리치지 못하고 일부는 국외로 탈출, 독립군으로서 일본에 항전, 상해 임시정부로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계속했었다. 일본의 한국 병탄 직후부터, 즉 1913년에 도산 안창호는 흥사단 운동을 일으켜 무실역행을 제창하고 지식, 경제, 도덕의 세 가지 자본을 축적할 것을 강조했었다. 1919년 상해에서 도산을 만난 이광수는 도산의 사상에 감동되어 1921년에 '민족개조론' 을 발표했다. 이광수는 전 민족의 도덕적 타락을 개조해야 할 것을 목표로 삼았고 도덕적 타락은 악정(惡政)에 기인하고 악정은 국가 민족보다 자리 당리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오, 개조는 먼저 자기 개조가 된 개인이 뜻을 같이 하는 다른 개인을 개조하고 확대시키되 종교나 정치와 관계가 없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5년 후 1926년 최현배는 일본유학 10년을 마치고 나서 1년간을 일본의 농가에 머물면서 사랑하는 겨레에게 바치는 선물로서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펴냈다. 최현배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에게 갖은 약탈과 수모와 천대와 압박과 박해를 받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를 밝혀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생각하되 오늘날 우리 민족이 갱생을 기하려면 가장 먼저 그 현재의 쇠퇴한 상태와 그 원인을 정시한 연후에라야 그 진정한 갱생의 방도를 구득하겠다 하노라. 컨대 의자가 병자를 치료함에는 먼저 병증을 정진 명단(正診 明斷)하여야 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 진상과 진인(眞相 眞因)을 정시하지 못하고 다만 그 개개의 미완 불건(未完 不健)한 것을 일정한 원리도 없이 이것도 해야 하겠고 저것도 해야만 하겠다고 분주할진대 이는 마치 의원이 환자의 본병이 어데 있는 지를 집증(執症)하지 못하고 다만 지엽의 증상을 제거하기에 급급함과 같아서 도저히 그 환자의 쾌복을 기하지 못할 것이다." (주). 그러면서 그는 우리 조선민족이란 일대 유기체도 어떠한 만성적 질고(疾苦)에 인하여 그 생명의 자유발전을 축하지 못하고 있다. 지엽적 병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마는 그 본간적 병질은 병명이 쇠약병이라고 하며 개인의 신경쇠약증과 흡사하여 살려는 의지가 박약하고 살려는 노력이 부족하며 따라서 의지의 소산인 희망이 없으며 노력의 결과인 행복이란 것을 가리지 못하고 다만 실망과 화난(禍難)이 중첩한 가운데에서 욕된 생을 무거운 짐같이 여기며 광명없는 암흑 가운데에서 고통의 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하면서 민족적 질병의 진찰, 민족적 쇠약병의 원인, 민족적 갱생의 원리, 민족적 갱생의 노력의 네 가지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첫째로 민족적 질병의 진단에는 병의 증세를 나열하고 있다. 의지의 박약함, 용기의 없음, 활동력의 결핍함, 의타심이 많음, 저축심의 부족, 성질의 음울함, 신념의 부족함, 자존심의 부족함, 도덕심의 추락, 정치적 경제적 파멸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민족적 쇠약병의 원인으로서 이조 오백년 간의 악정, 사상자유의 속박, 자각 없는 교육, 한자의 해독(害毒), 양반계급의 횡포, 번문욕예(繁文褥禮)의 누설, 불합리 불경제의 일제 생활 방식, 조혼의 폐해, 나이 자랑하기, 미신의 성행 열 가지를 들고 있다.

민족적 갱생의 원리로서는 민족적 생기를 진작하라, 민족적 이상을 수립하라. 우리 민족의 시대적 이상을 파악하라, 세 번째로서 우리 민족의 특질을 의, 정, 지(意, 情, 知), 세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의(意)적인 방면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인류구제라는 이상이고 정(情)적 방면은 예술을 좋아하고 군자지국을 말하고 지(知)적 방면은 첨성대, 측우기, 거북선, 건축, 조각, 회화와 공예, 자기요, 인쇄, 개성 복식 부기, 한글을 들어 우리 민족의 자질이 우수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민족적 갱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필요를 말하고 일어날 듯한 비평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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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현배 : 조선민족 갱생의 도, 정음문고 I, 1974, 정음사


다음 네 번째로는 민족적 갱생의 노력으로서 신교육의 정신 계몽운동, 체육장려, 도덕의 갱장(更張), 경제의 진흥, 생활방식의 개선, 민족고유문화의 발양(發揚), 여론 갱생 노력의 방식을 말하고 끝맺는 말로서 끝맺고 있다.

안창호, 이광수, 최현배가 일본에게 빼앗기고 우리 민족이 일제의 발굽 아래 유린당하고 신음하고 일부는 고국을 떠나서 유랑하고 있을 때에 이미 나라는 왜적에게 빼앗겨서 민족의 힘을 길러서 장래를 기다려 보자는 애국 애족의 정신에서 나온 사상이고 글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마음에 있는 대로 글로 다 표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민족으로서나 올바르게 잘살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자는 것이 공통이다.

원인은 한결같이 악정에 있다고 보고 민족이나 나라보다는 자리 당리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으면서 위정자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자기 자신부터 개조 개혁을 해서 이러한 동지들이 모여서 단체운동으로 번지고, 한 사람이 많은 단체에 참여해서 전국민에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최현배는 경제의 진흥을 강조하고 있으면서 물질이 아무리 풍요해도 소용이 없고 정신적인 면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고 민족적 생기를 진작하고 대리상 대노력(大理想 大努力)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긍정적인 유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 계몽, 체육 도덕의 갱장(更張), 생활 방식의 개선, 민족 고유 문화의 발양(發揚)으로 이러한 개인의 자기 개조와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단체 활동과 이러한 단체들이 단결해서 전 민족의 단결로서 민족 갱생이 달성된다고 결론짓고 있다.

물론 민족의 의식개혁에 힘쓴 분들이 그 외에 무수히 많았고 단체들도 많았으나 위의 세분을 대표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안창호의 흥사단 운동은 1913년으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80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안녕하십니까? 치과의사 홍성우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와 같은 첨단 시술이 행해지고 또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해도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으며 의학은 그야말로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의 정체가 드러났고,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과학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과질환인 충치 그리고 풍치 역시 교합과 관련지어 발생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교합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질환들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는데, 이런 재미난(?) 치과이야기들을 치과의사가 아닌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이 좋은 치료를 위한 눈과 귀가 되어드리기를 희망하면서 두 권의 책을 2012 년, 2014 년에 출간했으며, 2023 년 11 월에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1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Vol 2


홍성우의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개정판


잘 닦는데 왜 썩어요?

왜 혼자만 치아가 잘 썩을까요? 치료받은 치아가 또 썩는다면 정말 안닦아서 그럴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치과의사들도 충치가 있답니다.
남들은 찬물을 잘 마시는데 왜 혼자만 치아가 시릴까요? 그리고 신경치료를 해서 아예 시린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치료가 정말 좋은 치료일까요?
왜 음식물이 혼자만 잘 낄까요? 치과에서는 인공치를 하라거나 두 개를 붙혀서 아예 끼지 않도록 하라는데 그게 맞는 치료일까요?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면서 치아들을 뽑으라는데 정말 뽑지 않고서는 교정치료가 불가능할까요?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은 많은 의료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정보를 가려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알기 쉬운 치과상식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치과상식을 소개드리며, 좋은 치료 그리고 꼭 합당한 치료를 받으시길 소망해봅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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