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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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현미경, 그리고 교합

2011.08.02 20:15

홍성우 조회 수:934

1683년 9월에는 치아에 묻어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치실(dental floss)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네덜란드 한 소도시의 공무원이던 안톤 반 루벤호크(Anthony van Leeuwenhoek)에 의해 행해졌는데 그는 당대 최고의 현미경 제작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의 경우에는 매우 깨끗한' 그의 치아에서 '하얀 물질'을 조금 긁어내어 현미경 아래 놓고 관찰했다. 이 뛰어난 네덜란드인은 불과 수개월 전에 미생물을 관찰한 첫번째 사람이 된 참이었는데, 그는 그 역사적인 사건에서 목격했던 '살아 있는 작은 동물들'의 크기와 다양성에 깜짝 놀랐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세균혁명을 위한 무대가 마련됐다. 세균혁명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미생물의 존재와 그것이 부패의 원인일 가능성, 그리고 전염병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은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 이제 세균설은 적어도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학설로 인식됐다. 또한 독가스 이론은 많은 의사들에게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간에 병을 일으키는 작은 입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상황이 호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50년에 세균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정식 학설로 인정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낙담하고 있었다.
  
1850년대까지는 세균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그때까지도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는 없었다. 미생물이 외부에서 부패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조차 확실하지 않았고, 무해한 세균들이 많이 관찰됨에 따라 루벤호크의 '작은 생물들'은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됐다.
따라서 세균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전해야 할 첫 번째 주요과제는 자연발생론을 극복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특정한 미생물이 숙주에서 일관되게 똑같은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1800년대 중반의 의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한 인물이 등장하여 실험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가지고 다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새로운 발견에 이르는 길을 열어갔다. 그는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였다.
일단 발효과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파스퇴르는 필연적으로 자연발생론을 둘러싼 논쟁에 휩싸여야 했다. 1858년 펠릭스 푸쉐(Felix Pouchet)가 자연발생론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파스퇴르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파스퇴르 역시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름대로의 학문을 갖춘 과학자였던 푸쉐는 공기가 차단된 수은용기 안에 끓인 건초즙을 오랫동안 놓아두면 미생물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파스퇴르는 백조의 목처럼 구부러진 플라스크(swan-necked flask)에 끓인 설탕물을 넣었다. 구부러진 플라스크의 목은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지만 산소의 공급까지 방해하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공기 중의 물질이 설탕물에 닿기 쉬울수록 발효가 잘됐는데, 한 번 비틀어진 목을 가진 시험관에서는 미생물이 들어 있는 먼지들이 구부러진 부위에 잡혀서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푸쉐는 이전에 니드햄이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건초즙을 가열했기 떄문에 생명이 발생할 수 있는 능력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가열할 필요가 없는 멸균 용액을 소에게서 추출하여 플라스크 넣은 후 미생물이 생기는지를 검사했다. 하지만 몇주가 지나도록 미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최고의 과학실험이었으며 파스퇴르는 다시 한번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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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몸과마음 출판사에서 출판한 존 윌러 저 '왜 하필이면세균이었을까'에서 발췌함.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밝혀진 것은 불과 15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만 하더라도 환자들이 모이는 병원에서는 산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아서 사람들은 병원가기를 꺼렸고, 임산부들은 산욕열로 사망한 사례가 많았는데 의사가 다녀가면 죽곤 해서 의사들은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습니다.
  
교합의 역사는 암울했던 19세기를 뒤로 하고 20세기 중반에야 시작됩니다.
특히 지금 거론되는 기능교합이야기는 2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교합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거리단위는 밀리미터가 아닌 마이크론입니다.
세균을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듯이 교합도 작은 측정치로 재어보아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은박지를 깨물은 경험이 있으신지요?
은박지는 아주 얇지만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치아는 은박지가 붙은 것을 알아냅니다.
그렇다고 은박지가 치아에 붙은 채로 음식물을 씹을 수 있을까요?
씹기도 힘들 뿐더러 그래도 씹다가는 치아나 잇몸이나 치조골같은 치아주위조직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치아는 움직입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보다 뿌리쪽으로 그리고 앞쪽으로 그리고 혀쪽으로 움직이며, 음식을 다 씹고 나면
얼굴길이가 적어도 20 마이크론 정도 짧아지게 됩니다.

어금니가 움직일 때 어금니의 볼쪽 그리고 뒤쪽 부위는 교합면쪽으로 들리우는데, 잘못 닳게 되면 치아가 보다 많이 기울고 따라서 치아의 뒤쪽 어느 부위는 은박지가 붙은 효과를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저작중에 이 부위에 센 교합력이 작용되어 충치로 진행하거나 턱이 옆으로 움직일 때 대합치와 걸리면서 흔들리게 되어 풍치로 발전하기도 하고 혹은 발생된 센 교합력이 턱관절에 작용하여 턱관절장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임상가를 위한 교합학

안녕하십니까? 치과의사 홍성우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와 같은 첨단 시술이 행해지고 또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해도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으며 의학은 그야말로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벤후크에 의해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의 정체가 드러났고, 파스퇴르와 코흐 같은 과학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과질환인 충치 그리고 풍치 역시 교합과 관련지어 발생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교합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질환들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는데, 이런 재미난(?) 치과이야기들을 치과의사가 아닌 분들이 쉽게 이해하시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이 좋은 치료를 위한 눈과 귀가 되어드리기를 희망하면서 두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왜 혼자만 치아가 잘 썩을까요? 치료받은 치아가 또 썩는다면 정말 안닦아서 그럴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치과의사들도 충치가 있답니다.
남들은 찬물을 잘 마시는데 왜 혼자만 치아가 시릴까요? 그리고 신경치료를 해서 아예 시린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치료가 정말 좋은 치료일까요?
왜 음식물이 혼자만 잘 낄까요? 치과에서는 인공치를 하라거나 두 개를 붙혀서 아예 끼지 않도록 하라는데 그게 맞는 치료일까요?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면서 치아들을 뽑으라는데 정말 뽑지 않고서는 교정치료가 불가능할까요?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은 많은 의료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정보를 가려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 알기 쉬운 치과상식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치과상식을 소개드리며, 좋은 치료 그리고 꼭 합당한 치료를 받으시길 소망해봅니다.


잘 닦는데 왜 썩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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